새해 아침에 부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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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에 부치는 글
교회에 출석하거나 성경을 읽어 본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예수의 가르침에는 ‘선행’이라는 인생의 어젠다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습니다.
쉽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신학이론에 가려 빛이 바랜 ‘선행’이라는 구원의 비밀이 부활해야만하는 이유를 설명드리려 합니다.
창세기 2장 이후의 인류는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기준’으로 가치관의 변화를 맞았습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아(自我)로 바뀌었습니다.
곧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선(善)으로, 그렇지 않은 것을 악(惡)으로 규정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절대가치인 신(神)의 공의가 사라졌습니다.
도둑놈도,
살인자도 “자기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죄(חֲטָאָה)라고 말합니다.
도둑질이나 살인행위가 죄의 근본이 아니라 그것을 합리화하는 인간의 “후천적본성”이 죄(Sin)라는 점을 말씀 드리려는 것입니다.
도둑질과 살인은 죄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선행’조차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어쩌다 행하는 ‘선행’마저 자기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본심’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않도록 하라(마 6:1)”는 말씀의 진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6:3)”는 말씀의 의미도 같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도 동일한 의미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일은 자기의 ‘손해’를 의미하므로 매우 힘든 일입니다.
반대급부를 기대하거나 목적을 가지고 나누는 일은 ‘선행’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6장에는 별로 인용되지 않는 예수의 비밀스러운 말씀이 숨어있습니다.
저는 새해를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꼭 이 말씀의 비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내가너희에게말하노니불의의재물로친구를사귀라. 그리하면그재물이없어질때에그들이너희를영주할처소로영접하리라.
(눅16:9)
여기서 말하는 ‘불의의재물’이란 세상의 재물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끝에서 그 재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숨을 쉬고 있는 동안 그 재물을 베풀어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자리에서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뒷편에 앉아 있는 ‘배심원’으로 말입니다.
그들의 증언이 우리를 ‘구원’하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생전에 나를 미워하던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선행이 구원의 비밀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입니다.
새로 떠오르는 태양 아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인생의 결과를 심판하는 자리의 배심원단석에 앉아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친구를,
이웃을, 형제자매를, 길거리에서 무시로 마주치는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자면,
혹시 섭섭하거나 관계가 소원한 이웃이 있다면 이 기회에 “내편으로 만드는 전략”을 실천하는 새해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당부하신 말씀으로 오늘의 권면을 마치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하 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8:18)
이순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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